하루키스런 제목,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제목 예쁘다. 세라복을 입은 연필-처럼 하루키스러운 제목. 원래 이 사람의 에세이에서 보여지는 패턴은 평범한 화제로 시작해, 자기 경험을 쭈욱 설명하고, 간단한 감상과 견해로 마무리하는 게 일반적이다. 뻔하죠? 근데 그 과정에서 보여주는 유머가 알짜다. 주로 진지빨다가 터지는 유머랄까. 주위의 시각은 이러한데, 내가 보기엔 이렇다능 꽤 진지한 소견을 밝히면서 독자가 음 그런가. 소설가란 이런건가..싶을 때, 웃겨주신다.


단골소재는 달리기, 고양이, 재즈, 맥주, 영화, 여행, 독서, 장어, 초밥, 야구 등 자기가 좋아하는 것 위주다. 싫어하는 건 안 쓴다. 가끔 에세이를 연재하는 매체가 언론지일 경우, 시사도 쓰긴 하지만 안이한 단정이나 논란이 될 만한 정치종교적 이슈는 쓰지 않는 철칙이 있다. 그래서 이 사람 에세이는 편하게 볼 수 있다.


평범한 화제를 흥미롭게 바꿔 독자에게 전달하는 입담과, 자기 얘기를 익살스럽게 풀어내는 재치가 있는 작가다. 자기 경험에 기반해 화제를 풀어가니까 공감도 되고, 일상적으로 가볍게 얘기할때 써먹기 좋은 내용도 많다. 흔히 소설가(예술가)란 지병 하나쯤은 예사고, 밤새 술에 찌들어 살면서 자신을 거칠게 몰아붙여야 뭔가 위대한 작품이 나온다고 믿는 사람들에겐 충격이겠지만. 이 사람, 겁나게 반듯한 인간이다. 평생 변비나 어깨결림은 겪어 본 일이 없다고.. 그거 침팬지나 마찬가지 아냐! 그야 뭐 그럴지도 모르지만 우끼끼...스스로 망가지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특히 꽤나 진지한 사색 후 마지막에 가서 느닷없이 자기 생각을 뒤집어버리는 엉뚱함은, 이제 하도 봐와서 예상할 수 있는데도 막상 보면 또 입꼬리가 씨익 올라간다. ㅋㅋ 이런 유머는 다른 에세이에선 보지 못했던 종류의 웃음이라 나도 종종 써먹는다. 그래서 하루키 에세이는 읽을 때마다 즐겁슴니다요~.~


근데 이번 에세이는 쫌 별로군요. 웃기려고 노력한 흔적은 보이는데, 별로 안 웃기다. 치열함이 덜 하다고 할까. 이제 황혼에 접어든 작가에게 치열함을 바라면 욕심이겠지만, 잔잔하다. 얘깃거리도 뻔한 구석이 있고 말이지. 작가 자신도 매번 인정하는데 과거에 쓴 내용과 겹치는 부분도 꽤 많다. 그래도 어디까지나 예전 절정기의 에세이에 비해서 그렇다는 거지 그냥저냥 봐줄만 하다. 국내 소개된 '에세이만' 거의 다 찾아 읽은 에세이빠도리 입장에서 말하는 거다.


남자연예인 팬티 정도는 가볍게 벗겨대는 잡지, 앙앙에 연재한 에세이를 책으로 엮었다. 과거에 비슷한 잡지 anan에 연재한 <무라카미 라디오>와 비교해도 확실히 옛날게 재밌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채소의 기분, 바다 표범의 키스>, <저녁무렵에 면도하기> 3권으로 나왔는데, 이 정도 수준밖에 안되면, 뭐 별로 나머지는 안 사도 되겠어. 지금 봐도 웃기는 절정기 에세이 <오블라디 오블라다 인생은 브래지어 위를 흐른다> 퀄리티로 다음에는 제대로 하나 써주길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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